조선 명종 때의 진사 정소(鄭沼)를 추모하고자 1712년(숙종 38)에 순천유림인 조구년(趙龜年)·유책(柳策)·임진상(林鎭商) 등이 발론하여, 정소의 형 정자(鄭滋)와 지우(知友)인 조대성(趙大成)을 함께 배향하는 사우로 정소의 유지인 청사헌 자리에 건립하였다.
처음 이름은 청사사(菁莎祠)라 하였다. 1868년의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향사가 중단되었다가 1958년에 향교의 유림대표 조창렬(趙昶烈) 등과 연일 정씨 정운호 등 후손들이 협력하여 현 위치인 조례동에 사우를 재건하면서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개칭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순천향교 유림들과 연일정씨문중과 옥천조씨문중에서 후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함께 배양되어 있는 梅窓(매창) 조대성(趙大成,10世) 할아버지는 副正公派(부정공파)이시며 할아버지는 온(穩) 아버지는 숙관(淑瓘)이시다.
門蔭(문음)으로 勵節校尉(여절교위)를 제수하셨으나 德(덕)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으면서 牛溪(우계)成渾(성혼),栗谷(율곡)李珥(이이) 두 분 선생과 德義(덕의)로써 서로 사귀어 세상의 推仰(추앙)을 받으셨으며 또 思齋(사재)安處順(안처순),菁莎(청사)鄭沼(정소) 두 분과는 道義(도의)의 교분을 맺으셨다. 문장이 뛰어나고 도덕이 훌륭하시어 士林(사림)의 모범이 되셨으며 山水(산수)를 사랑하셔 호를 梅窓(매창)이라 하시면서 정자 하나를 谷城(곡성) 남쪽 梧枝里(오지리)에 지어 二樂亭(이요정)이라 이름하였다. 그 밖의 자세한 사적은『昇平誌(승평지)』와『浴川誌(욕천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嘉靖(가정)一五六六年(丙寅)閏十月二十二日 이요정에서 돌아가시니 享年(향년) 사십칠세의 아까운 나이셨다.